세계무역기구는 개혁에 성공하고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본 글은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ASPI) 웬디 커틀러 (Wendy Cutler) 부소장이 2020년 5월 20일 더힐(The Hill)에 기고한 글입니다.
호베르토 아제베도는 (Roberto Azebedo) 임기보다 1년 앞서 세계무역기구(WTO) 사무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세계 무역 흐름의 막대한 변화 속 개혁과 연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5년 역사의 기관에 또다른 고난을 안겨주는 발표였다. 세계무역기구 가입국들은 3개월 내에 새로운 총장을 선출해야 하며, 그 과정과 함께 국제 무역 주체들의 운명을 좌우할 과제들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한다.
1994년 마라케시에서 세계무역기구 창설이 협의되던 당시, 세계는 열의로 가득했다. 무역 장관들은 세계무역기구가 “세계경제를 강화하고 전세계 무역과 투자를 활발하게 하며 고용률 및 소득 증가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또한, 정부가 “모든 보호주의 압력에 저항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모든 게 뜻대로 전개되지는 않았다.
창설 후 25년이 지난 지금, 세계무역기구는 마비된 분쟁 해결 시스템과 교착 상태의 협상으로 발이 묶여 있는 상태이다. 미국과 중국이 제네바 밖으로 무역전쟁을 이어 나가며 지난 2년간 세계무역기구는 열외 취급을 받기도 했다. 미-중 무역협정 1단계로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잠시 보였지만, 코로나 사태가 또다시 세계를 덮쳤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많은 국가들이 의료 장비, 의약품 및 식품에 대한 수출을 제한했다. 세계무역기구는 이러한 변화에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COVID-19관련 무역 조치 통제에서 소외되었다.
세계무역기구는 회원국 중심의 조직이다. 뛰어난 리더십,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 없이는 자체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없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의 수장으로서의 역할에서 물러나며 유럽과 중국도 채우지 못하는 공백을 만들었다. 중견국들의 무역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에는 찬사를 보내야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기여에는 한계가 있다.
아제베도는 사퇴 발표에서 지금이 물러나기 적절한 시기라고 언급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물러남으로써 후임 총장이 차후 세계무역기구 각료 회의에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제베도의 사임일은 8월 31일로, 새로운 사무총장을 임명할 수 있는 시간은 3개월여에 불과하다. 이것은 기존의 선출 기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적 제한은 세계무역기구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시간적 제한으로 인해 회원들이 가장 기초 고려 사항인 ‘세계무역기구가 각 지역을 고르게 대표하는가’에 관한 고민과 선진국과 개도국의 문제점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또한, 세계무역기구의 퇴행을 야기시킨 핵심적 의제들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여야 한다.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들은 (1) 어젠다를 주도하고, 결정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으며, 회원국들을 편의성에 도태되지 않게 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위 출신의 총장을 선호할 것인지, 아니면 더욱 신중하고 드러나지 않게 행동하며 회원국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총장을 선호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고; (2) 세계무역기구를 하나의 국제적 주체로 바라볼 것인지, 혹은 국가간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는 계약서 역할의 연결고리로 바라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며; (3) 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지 않는 국가들은 대변하지 않은 채 분쟁해결에 대한 절차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이들은 모두 어려운 문제들이며 회원마다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미국, 중국 및 162개의 회원국이 이번 여름까지 후보를 선출하지 못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임시총장 체제가 불가피하다. 코로나 사태를 비롯하여 세계 무역 시스템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을 고려할 때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선발 기준이 얼마나 강경할 것인지, 또한 후보에 대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지의 여부이다. 두명의 후보가 각각 2년의 임기로 일하기로 한 2000년과 같은 창의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미국은 이 논쟁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 탈퇴를 고민했지만, 최근 미국무역대표부(United States Trade Representative, USTR)에서 작성한 연례보고서에는, “(미국은) 여전히 세계무역기구가 시장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고, 세계 경제 간의 균형 있는 무역을 추진하며, 미국 국민들이 더 큰 부와 번영을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고 분명히 적혀 했다. 제네바는 미국무역대표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Robert Lighthizer) 대표가 미국이 '새로운 총장 선출 과정에 참여하기를 고대한다'는 짧은 발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중국은 지금까지 이 전선에서는 조용했지만, 장샹첸 세계무역기구 중국대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세계무역기구가 "리더쉽의 부재와 회원국 간 신뢰 편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중국은 다자무역체제의 주요 수혜국"이라며 “중국과 미국이 함께 협력할 수 있다면 두 국가가 이 제도 하에서 함께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보통의 세계무역기구 신임총장 선출이라면, 상당한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아제베도가 코로나 사태와 세계경제악화의 시기에 갑작스럽게 떠난다는 사실 또한 선출 과정을 더욱 복잡하게 할 것이다. 회원국들은 각자가 원하는 세계무역기구의 모습에 더 가까운 총장을 지지할 것이다. 이것은 향후 몇달간 여러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강하고 활동적인 총장은 우리가 원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